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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17/12 (18)
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사람들은 흔히 유명인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탁월한 성취, 업적을 보고나서 그 화려하고 대단한 '성취의 순간'만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가 '그곳'까지 걸어가야 했던 험난한 여정과 고생길이 능히 짐작될 것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이든 동네 뒷산이든 결국 '정상'을 향해 내딛었던 '한 걸음'들이 쌓인 결과로 그 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무도 그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그는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던 것이고, 그 걸음들의 결과로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그 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간과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평에 눈을 떠가기도 하지만, 다른 ..
야만의 세월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지난 10년간을 겪으면서 몇가지 내 삶의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영화를 보는 취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잔인한 묘사가 나오는 작품들도 별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젠 타인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영화나 TV방송은 못보게 되었다. 현실에서 무수히 목도한 잔인한 현실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그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 작품들도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잘 안보게 되었다. 그런 주제의 작품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쳐있는 내 마음을 지키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현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품보다는 판타지나 SF..
※ 2017년 4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나는 크리스천이나 교회에서의 크리스천들도 교회봉사활동에 열심인 부분만 제외하고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비신앙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믿는다는 점만 차이일뿐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바도 '커지고, 강해지고, 성공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죠. 얼마 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예수의 탄생과 삶은 결국 '작아지고 약해지고 실패하더라도'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요? 작아지고, 약해지고, 실패하는 자리에 함께 계신 하나님 -어쩌다 이 길에 들어섰을까? 첫 신앙의 추억- 난 어쩌다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다 신앙의 매력에 빠졌을까? 그리고 난 왜 지금의 교회와 ..
이해안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관찰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있다보니 그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깊이 생각할 때가 있다. 주변에 자꾸 잘못된 선택, 어리석은 결정을 해서 잘 안풀리는 후배나 지인들을 보다보니 그들의 공통점중 하나를 깨달은 것이 있다. 한때 엄청 성공했다가 실패한 경우든,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실패한 경우든...반복된 실패가운데 지쳐있는 사람들은 '늦었으니까 어떻게든 한방의 역전을 해야한다'는 심리가 많은 것 같았다. 어쨌건 실패와 시행착오로 시간을 허비했으니, 더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자꾸 단기간의 성과나 상황역전을 바라는 요행수를 바라거나, 위험이 크지만 성공만 하면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에 몰입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다..
※ 2017년 2월에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사랑보다 혐오, 관용보다 차별을 앞세우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글입니다. 예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너그러움, 자비, 사랑의 이미지가 왜 개신교인들과 교회를 생각할때는 영 어색한 것일까요? 사랑과 관용의 예수, 혐오와 차별의 교회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간디의 이 말처럼 지금 이 사회에서 예수는 좋은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는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간디가 정확하게 지적했듯 예수와 그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닮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꽤 많은 차이를 분석..
요즘 계속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매섭지만 출근하기 전 20분, 잠들기 전 20분 정도를 집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거창한 운동은 아니고 푸쉬업이나 스쿼트, 덤벨운동, 유산소 운동으로 '트위스트 런'이라는 기구를 이용한 운동이다. 운동에 대한 습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유는 '운동의 목적'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대나 30대만 해도 운동의 목적이 '멋지고 근사한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 '건강'이 삶의 기본요소 중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날마다 그 고통을 나눠지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나중에 수습이 힘든 '고통'을 겪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으니 주변 친구들이나..
※ 2014년에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지금도 저는 자연속으로 들어가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용기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더 그런 꿈을 키웠던 적이 있죠. 스콧니어링의 삶은 자연속에 들어가 은둔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매력적인게 아니라 자연속에서 생태적 삶을 살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고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을 비판하며 시대의 부조리를 깨우치는 글과 강연활동을 계속 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속에서 살되 세상을 염려하고 참여하는 그의 삶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자연속에서 살되, 세상을 등지지 않으며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선지자의 삶이 이런 삶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때론 책을 읽다가, 최근에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생각과 정..
※ 2012년 1월에 페북에 올린 글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권위주의와 그릇된 계급의식, 성직주의는 비단 나이많은 목회자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 친구녀석은 목사가 되더니 사적인 자리에서도 존댓말을 하라고 요구하더군요. 존댓말은 커녕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거의 연락을 안합니다. 나이많고 노회한 목회자들의 권위주의도 답이 없게 느껴지지만 젊은 목사들의 그런 모습은 정말 갑갑하더군요. 우리 교회에 청년들에게 인기 많은 어떤 젊은 목사님이 "상위질서의 허물을 입에 담지도 마세요 순종하세요"라는 글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 ※ 상위질서?... 성경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그의 글에 100명이 넘는 청년들이 '좋아요'를 눌렀다...한국교회의 미래가 암담하다...ㅠㅠ;;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들은..
※ 2011년 12월에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당시 한참 나꼼수 팟캐스트 방송 열풍이 불때였죠. 마침 김동호 목사님이 나꼼수 방송을 3분 정도 듣고 비판의 말을 페북에 쓴 것이 뜨겁게 화제가 되었던 때의 글입니다.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만이 신앙적가치라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요. 십자가의 의미가 과연 그런 의미일까요? 사랑과 공의, 용서의 의미를 깊이 분석해본 글입니다.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사랑인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린, 모두 헛점 많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이다.신앙이라는 것이 이성과 논리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 각자에게 임하는 신비한 ‘회개(회심)의 체험’ 때문이다. ‘회심의 체험’은 그 양상과 구체적인 모습이 다 다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
※2016년에 쓴 글인데요. 기독교를 '카톡교'라고 비난할 만큼 거짓루머,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는데 '교회단톡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걸 저도 직접적으로 몇 번 봤는데요. 왜들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퍼다나를까 생각하다 어느날 화가나서 페이스북에 쓴 글을 좀 다듬어 기고한 글입니다. (그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런 스트레스로 화난 교인들이 많았는지 420번 넘게 공유 ㅎㅎ) 재밌는 건 이글 쓰고 몇 달지나서 적어도 2년은 돌았던 황당한 루머를 어느 친구가 교회단톡방에 또 올리더라구요. 아는 장로님이 주신 글이라며...ㅠㅠ; ※최근 돌고있는 이런 교회카톡루머를 주제로 다룬 언론기사- 기독교발 루머는 이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악성 루머의 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