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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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쓱쓱

신의 전능함과 인간의 한계

에쎌디 2017. 12. 10. 15:26

​​*2015년 페북에 쓴 글인데 요즘 부쩍 자주 생각나는 주제입니다. 언제 한 번 깊이 묵상해서 정리하고픈 주제네요. 인간은 끊임없이 신의 완전함과 전능성을 바라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생의 한계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글입니다.


요즘 자주 묵상하는 주제 중의 하나다. 희망, 신의 전능함, 인간의 무력함, 인생의 고달픔...뭐 이런 주제들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생각이 정리되진 않았는데 긴 글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가지 어렴풋이나마 생각의 결이 잡히는 것중의 하나는 신의 전능함을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지만(마블의 슈퍼히어로들 처럼), 신은 도리어 인간의 한계 많은 삶 속에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능력과 힘을 지니게 되었을 때 역사는 그런 인간을 통해 아름답고 영광스런 신성을 드러내기는 커녕 죄와 광기로 가득찬 악마성을 드러냈다는 것을 기록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이 문명사적 정점을 찍었을 때 참혹한 세계대전의 그늘로 온 세계가 절망에 빠졌듯이...

​​-세실 B 데밀 감독 영화 '십계'증에서

도리어 인간의 삶이 끝없는 고통과 한계 속에 탄식하며 철저히 연약함의 굴레에 갇혔을 때 신은 그런 삶의 한계를 통해 영원한 사랑과 영광스런 신성의 빛을 밝게 비추는 것 같댜. 거기엔 역설적으로 찬란한 희망의 빛이 있다.

어둠 가득한 동굴 속 살짝 벌어진 바위 틈새로 비추는 빛이 더욱 화려하고 강렬하듯...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원한 희망, 영원한 사랑, 영원한 생명의 빛이 잠시나마 우리 삶에 반짝이며, 이론이 아닌 실존하는 '희망의 실체'를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아담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펌프질하며 신이되고 싶어했지만, 예수는 철저히 한 인간이 되기위해 끝없이 낮아지고 자신을 '한계에 가두는' 순종의 싸움을 싸웠던 것이리라. 그런데 재밌는 건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간헐적이라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 기적이나 은사를 보여줄 때 열광하며 따르려 한다. 적어도 이런 현상은 장로교건 감리교건, 순복음이건 교단과 상관없는 공통된 현상인 것 같다.

인간에게 부여된 신성의 영광을 체험하고 싶다면 욕망을 극대화하기보다, 철저히 인간됨의 한계에 천착하며 낮아지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아마 예수께서 말씀하신 '멍에'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그 멍에란 바로 '신이 되려는 욕망을 버리고' 참 인간이 되는 수고와 짐을 짊어지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서‬ ‭11:2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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