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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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파머)-모순과 긴장을 끝까지 끌어안은 공동체

에쎌디 2017. 11. 4. 15:50

지난 10년은 정치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경건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불순하고, 더럽고 온갖 거짓된 것들이 판치는 정치에 관심을 끊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봉사와 헌신을 하는 것만이 가장 아름답고 바람직한 신앙인의 삶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생각이 변한 것은 교회 내외적인 요인이 있었는데, 교회 내적으로는 믿고 존경하던 목사의 성범죄 사건과 그를 처리해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한 교회의 모습과 교인들의 모습을 통한 충격이었다면, 교회 외적으로는 불의한 정권의 온갖 비리와 모순과 부조리를 까발리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듣게 되면서 부터였죠. 

두가지 일은 어쩌면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인것처럼 보이나, 제게는 묘한 공통점이 느껴졌습니다. 김어준씨는 '닥치고 정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게 뭔지, 그 결과가 어떤 건지 알게 됐다. 그걸 이념이나 학습이 아니라 내 몸으로, 생활에서, 느끼게 됐다고.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 생활의 스트레스, 그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까 투표는 사실 민주주의를 위한 게 아니야. 그런 건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야. 투표는 내 스트레스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이야. 그게 줄어야 내가 행복해니까."   

-김어준 <닥치고 정치>-



'정치'라는 건 국회의원들만 신경써야 하거나, 교회의 장로나 목사들만 하는게 아니라 내 삶과 긴밀히 연결된 개념이란걸 알게 된 거죠. 결국 전병욱 목사 사건이나, 당시 이명박 정권의 전횡과 온갖 비리는 저에게 하나로 연결된 개념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에 대한 오해와 바른 신앙에 대한 오해가 '무관심'을 가져왔고, 그 무관심을 틈타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이 창궐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저는 교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싸우며,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을 하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각성 이후에 한번도 참여해 보지 않았던 거리시위나 거리기도회도 참 많이 참석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저렇게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이 저 자리에서 피켓들고 기도하고 한다고 뭐가 변할까?'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직접 그런 자리에 참석하며 시위하고, 기도하면서 '현장'에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내 의사를 표현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 어떤 감동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삶의 행동으로 연결될 때 어떤 감동과 영감이 있는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현장에서 그들 곁에 있어주는 활동가와 시민들을 정말 존경합니다.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광화문 촛불집회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 끝없이 좌절하고 절망했는데요. 그때 깊은 위로를 줬던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파커J.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부제: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이였습니다. 파커 J.파머는 미국을 대표하는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며 독실한 크리스천인데요. 이 책을 시작으로 파커 파머의 책은 무조건 사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실망을 안긴 책은 한 권도 없을 정도로 주변 분들에게도 많이 추천하는 저술가입니다.

파커 파머는 '정치'에 대한 거부반응과 반감을 갖고 있던 저같이 보수적인 신앙배경의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만한 설득력있는 책을 썼습니다. 아름답고 논리적인 문장과 탄탄한 역사적인 배경, 실제 사례등을 제시하며 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치'라는 수단을 활용해 공동체를 세워가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에 대한 아래의 글은 깊이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마음의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을 전진하고 대항하는 체스 게임, 권력을 잡기 위한 야바위 노름, 서로 비난만 해대는 두더지 게임으로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거기에서는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할 수 있고, 사랑과 권력이 협력할 수 있으며, 정의와 너그러움이 함께 실현될 수 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 파머> 중에서



이책에는 감동적인 역사적 사례들이 충실히 실려있는데요. 특히 온건하지만 끈질기게 노예제에 저항했던 퀘이커 교도 '존 울만'의 이야기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책을 읽다 말고 한참 그 여운을 곱씹었습니다.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강력하고 부드럽게 저항할 수 있는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 같은 놀라운 사례 였습니다. 

'존 울만(1720-1772)은 식민지 시기 뉴저지에서 살았던 퀘이커교도였다. 그는 함께 어울렸던 상인과 농부들로 구성된 프렌드교파 Society of Friends (퀘이커교파의 공식 명칭)의 회원이었는데, 거기에서는 노예를 얼마나 많이 거느리고 있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좌우되었다. 물론 그 노예들은 그 회원과 마찬가지로 이름, 가족, 역사,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노예를 두지 않았던 재단사 울만은 인간의 평등함에 대한 퀘이커교도의 신념과, 많은 퀘이커 교도의 상류층이 노예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 사이의 적나라한 모순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한 모순을 무시하거나 기술적인 속임수를 쓰거나 그 갈등을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으로써 긴장을 해소할 수도 있지만, 울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공동체가 그 긴장을 정직하게 끌어안고 성심으로 노예를 해방하게 함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퀘이커교도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다수결 대신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데, 울만의 지역 회합에서는 그의 제안에 관한 의견을 통일시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만이 그 문제에 절대적인 성심으로 임하는 모습에 설득당한 이들은 그를 지지하기로 동의했다. 그 뒤로 20년 동안 울만은 동부 연안을 따라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서 프렌드 교파 회원들을 집과 상점과 농장 그리고 모임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퀘이커교도 동료들에게 신앙과 행동 사이에 생기는 가슴 아픈 모순을 이야기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믿음에 진실했다. 그는 염색하지 않은 흰옷만 입고 다녔는데, 염료가 노예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심코 노예가 마련한 식사를 하는 대신 금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심코 노예가 수고해준 혜택을 입으면, 교환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면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려 했다.

울만과 그의 가족은 진실의 명령에 대한 일관된 증언과 깊게 느껴지는 비통함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그는 그 긴장을 마다하지 않고 무려 20년 동안 끌어 안았다. 결국 퀘이커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노예를 해방시킨 종교공동체가 되었는데, 이는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80여 년 전의 일이었다. 1783년 퀘이커교도들은 인간을 노예화하는 데서 오는 "복합적인 악"과 "정의롭지 못한 상업"을 시정하라고 의회에 탄원했다. 그리고 1827년 이후, 퀘이커교도들은 '지하 철도'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하 철도란 "퀘이커 교도들의 주장에 공감한 노예 폐지론자들의 도움을 받아 19세기 흑인 노예들이 자유국가와 캐나다로 도망치는 데 이용한 비밀 경로와 안전한 가옥의 비공식 네트워크"였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J. 파머> 중에서

소수의 의견이라고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공동체를 파괴시키지 않으면서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설득해가는 모습에서 '모순과 긴장을 끝까지 끌어안는 공동체'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공동체를 세워가는 기독교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10년 동안 야만의 시대에 도처에 흘러넘치는 '비통함'으로 분노와 슬픔, 좌절 속에 빠져 있던 저에게 한 줄기 위로와 희망의 빛을 비춘 책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정치에 대해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접근해야 되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가장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10점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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