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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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역습(웬델 베리)-한계를 인정하는 삶의 유익

에쎌디 2017. 11. 11. 08:58

근대화가 된 이후 그 전에 살던 인간들과 현대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자기 삶의 한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근대화 이전의 인간들은 자기 삶에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 계급, 혈통, 신분, 직업 등에 대해서 종속적인 삶을 살았다면, 현대인들은 태어날 때의 환경이 어떠하든 살아가면서 그것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전 근대화 이전 과거시대에 제가 태어났다면 정말 갑갑하고 답답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변수들이 너무 한정적이니까요. 그러나 그 반대인 현대인들의 삶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갸우뚱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과학 기술과 문명,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의 발달로 원하기만 하면 정말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도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과 환경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대형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 서적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인간의 자기계발과 무한능력, 무한 성취를 고취하는 문화가 심각한 개인적, 사회적 병폐를 가져왔다고도 봅니다. 가히 자아과잉의 시대라고 할 수 있죠.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행동하라' 이런 종류의 카피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먹힙니다.





저는 40대를 넘기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으로 '내가 할 수없는 한계'가 무엇인지 이제 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기 한계를 안다면, 아니 자기한계를 안다고 착각하며 자신의 잠재능력을 제한한다면 삶이 너무 재미없고 우울하지 않냐고 물어보신다면 전 분명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자기한계를 안 다음부터 제 인생의 '자유'가 더 커졌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무리해서 이루려고 건강과 정신을 상해가며 나를 몰아가지도 않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도리어 다양한 재미난 삶과 의미있는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 부담없이 노력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자기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로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실제로 저는 제 한계를 알게된 후 도리어 오지랖이 넓어져서 저랑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일, 별로 돈도 안되보이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참여하며, 독서모임, 스타트업 스터디 모임 등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하며 돈 안되는 일에는 전혀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하는게 행복하고 재미있습니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삶이 저에겐 삶의 재미와 여유를 가져다 주었고, 보다 넒은 시각으로 사회와 공동체, 이웃들을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으니까요.



나 혼자 또는 인간 혼자 잘살면 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생태적 삶'에 대한 깨달음은 지금의 저를 있게한 중요한 도전이었고 자극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여럿 있는데 그중의 한 권이 오늘 소개할 '지식의 역습' (웬델 베리) 입니다. 웬델 베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입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존경받는 사회평론가인데, 그는 삼십대 초반 선조들이 농사를 지어온 켄터키로 돌아와 지금까지 40년째 전통적인 농법을 고집하며 독립적 소농 중심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영감어린 글들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문화와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또 언제나 긍정적인 희망과 대안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죠. 이분의 글은 책상에서 사색과 관찰로만 쓰여진 게 아니라 고된 노동을 수반한 철저한 자기 수양적 삶에서 깊게 우러낸 글이라 깊은 사유와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기독교적 가치로 사회문제와 개인의 삶을 바라보며 쓴 글들이 많아 신앙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The Way of Ignorance'라는 원제가 암시하듯이 인간의 지식과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숭배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하며,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는 삶이야말로 지혜롭고 현명한 '생태적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문화에 저항하여 도리어 의도적인 '무지와 신비의 삶'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과도한 지식숭배의 오만함을 비판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앞부분에 예수가 선포한 메세지의 생태적 성격, 복음의 의미, 성경의 난해함 등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특히 아래와 같은 문장은 너무 깊이 공감이 되는 명문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훈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너희는 알지 못한다. 너희는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는 잘못 알고 있다.'

복음은 우리 삶과 위험할 만큼 깊고 불가피하게 관련되 있는 수수께끼의 출발점에 위치한다. 복음서는 이 수수께끼의 일부만 보여줄 뿐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전부를 보여주려면 이 세상에 둘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은 얕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위대한 지식이 드러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수께끼 속에서 산다는 것은 저주인 동시에 굉장한 특권이다. 이런 특권을 가진 우리는 신앙을 판단과 설명이 뒤얽힌 것으로 축소하거나 신에 대한 한두가지 친숙한 이야기로 축소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축소된 종교는 환원주의 과학만큼이나 문제가 많다. 현실은 광활하고 우리의 두뇌는 작기 때문이다.'

[지식의 역습
(The Way of Ignorance) / 웬델 베리] 중에서


자연 속에서 오래 동안 노동하며 철학하는 삶을 살아온 웬델 베리

웬델 베리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두루 살피며 사회 제도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개인 삶의 변화를 넘나들며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성공'에 대한 재정의였는데요. 그는 성공한 삶이란 '생태적이고 사명에 부합하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소박하고 검약하며 작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가능성이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기 한계를 알고 '한계 안에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죠. 

'보잘것없는 지식을 가진 우리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성공:생태적이고 사명에 부합하며 조화로운 삶을 의미)

질문에 대한 답은, 형태의 제약을 인정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우주를 창조할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대다수 사람은 큰 전투에서 함대를 지휘할 일도 없다. 우리의 능력과 환경, 자연과 삶의 유한성에 의해 부과되는 명백한 한계를 인정하고 적절한 규모를 설정할 때, 우리는 삶의 형태를 결정하고 만들어 갈 수 있다. 일단 형태가 잡히고 나면 우리의 한계 안에서 아름답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


[지식의 역습(The Way of Ignorance) / 웬델 베리] 중에서

여유로운 삶, 좀 더 소박하고 작은 삶을 추구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을 겁니다. 바쁜 일상과 도시의 삶을 떠나 조용한 카페에서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지식의 역습 - 10점
웬델 베리 지음, 안진이 옮김/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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