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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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과 현실도피, 그리고 신앙

에쎌디 2018. 9. 3. 09:01

어제는 어머니를 보러 요양병원을 갔다가 정말 너무 속이 상했다. 마침 내가 도착한 시점에 어머니는 또 소리를 지르며 퇴원하겠다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우기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신체적으로 당신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반증이다.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때는 의식만 겨우 있을 정도로 꼼짝도 못했는데 이젠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소리지를 정도의 에너지가 생긴거니까.


그러나 건강이 좋아지면 정신의 피폐함과 망상은 살아난다. 이 요양병원 원장과 간병인이 작당을 하고 자기를 괴롭히려 음식을 한달째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코로 수액과 영양액이 들어간지 한달 가까이 된 이유는 당신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누웠다가 앉지도 못한다. 두 다리에 힘이 너무 없어 휠체어에 앉힐때도 두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휠체어에 앉힐 수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답답하니 이 병원에서 퇴원하는게 하나님 뜻이라며...(그놈의 '하나님 뜻' ㅡ.ㅡ; )억지 생떼를 쓰고 있었다.


간병인과 간호사, 주변의 할머니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20년 가까이 겪었기에 얼마나 사람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지 잘안다.


어제는 나도 화가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퇴원합시다. 엄마가 퇴원하면 집에서 내가 24시간 돌볼수가 없으니 엄마 스스로 일어나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적어도 화장실은 갈 수 있어야겠죠? 자 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저 병실 문까지 걸어가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일으켜세우고 침대 안전바를 내려줬다. 본인은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1cm도 움직이는게 힘들었다. 몸을 내쪽으로 돌리려고 애쓰면서 손을 좀 잡아달라고 했다. 난 매몰차게 거절했다.


'엄마가 집에서 살려면 이정도는 도움받지 않고 일어나야지!'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 자기 몸에 대해 그제야 깨달았는지~더이상 퇴원시켜달라고 소리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작은 소동은 끝났지만, 간호사와 간병인은 내가 나가면 또 반복해서 저럴거라며 걱정이 많았다.


담당 간호사에게 정신과 약의 투약을 늘리는걸 의사선생님께 고려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의 공격성과 망상이 심해질때는 정말 아무리 전문가고 의사라 그래도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해본적은 없지만, 20년이상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은 많다. 어머니의 망상이 시작된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도피였던 것 같다. 현실도피로서의 망상은 신앙의 힘으로 더욱 강화되었고~어머니는 거의 하루 종일 자기의 염원을 담은 기도를 하곤했다.


그 기도의 내용에 타인은 없었다. 오로지 나와 어머니 자신을 위한 기도일뿐...나는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루종일 반복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왔고, 그 변치 않는 기도를 수십년째 반복하는 어머니의 근성과 끈질김에 또 놀랐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또 그런 어머니를 감당하다가 지쳐서 언제부터인가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기도하는게 두려웠던건지도 모른다. 저렇게 에고의 늪에 빠져버릴까봐...


어머니의 불행은 '자기 염원대로 변하지 않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몰랐던 데서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현실도피의 망상으로 빠져들었고, 거기에 신앙은 강력한 동기부여와 에너지를 부여했다.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신앙'이란게 한 사람의 삶을 저렇게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는 조현병이 발병한 이후 단 한순간도 '현실'속에서 살지 못했다. 과거의 회환에 젖어서 분노를 터뜨리거나, 미래의 망상과 근거없는 희망에 빠져서 기도하느라 현실을 무시했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 계속 반복하는 말이 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몰라? 불과 얼마전에는 건강했는데...' 그 말만 계속 반복한다.


어머니는 평생 '현실'에서 사는 법을 몰랐고, 지금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살아가는게 쉬울 인간이 어디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는 법을 배워간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기 뜻대로만 되어가는 현실'이라면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가 원치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갈 때 인간은 성숙해지고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어머니를 비롯해 비슷한 증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어봤다.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염원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부적응과 좌절이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자기가 못견뎌서 정신적인 도피처로 도망가거나 망상의 세계로 빠져간다.


우리 어머니를 7년간 치료하고 진찰했던 의사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제 경험상 기독교 신앙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는게 가장 어렵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며 대화를 시도하다 보면  그들 스스로 자기 망상의 논리적 헛점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자기 생각이 망상이라는 것을 알고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독실한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에요. 그들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망상의 논리적 헛점이 드러나는 순간 '전능한 신'께서 불가능한게 없으시다고 '비약'해버립니다.'


누군가에겐 신앙이 삶의 존재이유이자 목적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신앙은 인생의 늪이 될 수도 있다.


그 기준은 내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게 돕는 신앙인지,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신앙인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


내가 보잘 것 없고, 초라하고, 가난하고, 살기 힘든게 이 세상이라도 그 모습 그대로 껴안고 사랑하게 하는 신앙인지...

아니면 넌 지금 비록 고난중에 있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백배 천배 복주실 거라고 약을 파는 신앙인지...


당신이 붙들고 있는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스캇 펙 박사의 명저 '아직도 가야할 길'의 서두에는 '현실을 바로 보고 인식하는 것'이라는 챕터가 있다. 오랜만에 그 책을 펼쳐놓고 그 부분을 다시보니 이런 내용이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는 고통을 다루는 데 필요한 훈육의 세번째 요소는 진실에 충실하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영혼이 성장하려면 이것이 항상 필요하다. ...세상의 현실을 명확하게 바라볼수록 세상에 대처할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 세상의 현실을 덜 명확하게 바라볼수록, 다시 말해 우리의 정신이 거짓과 오해와 환상으로 혼란스러워질수록 올바르게 처신하고 현명하게 결정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삶의 영역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지도와 같다. 지도가 진실하고 정확하면 기본적으로 우리의 현재 위치를 알게 될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질 때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지도가 잘못돼있고 부정확하다면 대개 길을 잃을 것이다."

나는 현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신앙이 진짜 신앙이라 생각한다. 정신건강에도 좋고...

예수의 가장 큰 시험은 '지금, 여기에서' 십자가를 져야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래의 영광이 아니었을까? <2018년 8월 페이스북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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