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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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화 할 수 없는 것을 객관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교회방언

에쎌디 2018. 9. 9. 21:54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데 '영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봤다. 그분의 글 자체에 공감을 못하거나 그분을 저격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그냥 그런 표현과 워딩이 너무 낯익지만 평소부터 거부감이 있어서 관련된 생각을 적어본다.

교회에서는 매우 친숙한 표현이고 습관적으로 쓰지만 교회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언어들을 '종교방언'이라 칭한다면, 나는 한국교회의 종교방언이 건강하지 않은 신앙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본다.

대개 그런 종교방언등은 곤란한 상황을 퉁치거나(기도할께), 책임을 모면하거나 (기도해 볼께요), 정확한 평가를 하면 상처받을께 두려워서 (은혜로왔어요) 두리 뭉실하게 넘어가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종교방언등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인데~문제는 측정할 수 없고 객관화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는 언어들이다. 대표적인게 '영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빨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았다...뭐 이런 류다.

하나같이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에 그런 '영성'(성령의 임재)가 객관적으로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나또한 신앙생활하면서 가끔...(아주 가끔) 그런 느낌적 느낌이 있을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신앙생활하는 개인에게 그런 '신비적 체험'이 전혀 없다면 신앙생활의 재미(?)와 감동이 너무 없고 건조해서 무슨 낙으로 신앙생활을 할까? (난 그런 재미와 감동을 신앙이 아니라 '덕질'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의지만...)

여하튼, 그런 것은 이해하나~'영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방의 영성이나 신앙이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신앙적 체험의 영역에서 남겨두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을 '객관화해서' 표현하는 순간 자신의 판단을 그냥 '신의 판단'과 동격화시키는 행위가 되버린다. 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표현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내뱉는다.

'대원형제님은 영성이 느껴지지 않아.'

이건 실제 나에게 어떤 목사가 한 말이다. 나는 별로 상처받지 않았다. 도리어 속으로 좀 뜨금했지...ㅎㅎㅎ 난 진짜 영성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그걸 맞춘 그 목사님의 영성은 수준급인듯...^^ 그러나 그분이 영성이 좋아서 나한테 그런 평가를 내린게 아니라는데 만원 걸 수 있다. 그분이 생각하는 영성이 뛰어난 사람의 스테레오 타입은 목사 말 잘듣고 고분고분 순종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난 그런 타입의 사람은 절대 아니었으니 ㅎㅎ

이런 섣부른 판단과 정죄의 워딩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과 분통을 터뜨린 경험을 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 신앙생활에서 만난 사람만 해도 이루 셀수가 없을 정도다. 특히 이런 워딩은 목사나 간사, 리더, 장로 등 특정 직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습관적으로 정말 많이 내뱉는다.

이런 표현은 이제 좀 자중하면 좋겠다. 훨씬 더 완곡하게 표현하든가...아니, 영성과 신앙의 성숙에 대해서는 아예 객관화든 주관화든 평가하는 말을 하지 않는게 가장 성숙한 기독교적 워딩이 아닐까?

그럴리도 없겠지만 설사 객관화시켜 측정할 수 있는 '영성의 척도'라는게 있다쳐도 그 영성이든 신앙의 성숙도든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게,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일수도 있는게 아닐까? 음식에서 냄새가 나는데 냄새가 안맡아지면 그건 비염이 걸린 사람의 문제지 냄새가 안나는 음식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않나?

우리는 어느 순간 신을 믿는다는 핑계로 너무도 쉽게 '신의 자리'에 올라서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객관화할 수 없는 것은 그저 그대로 놔두면 좋겠다. 그 영역에 대한 평가를 자기 느낌과 편협한 생각을 기준으로 '전지적 하나님 시점'으로 표현하는 순간, 다른 사람을 바보 만들고 열등하게 만드는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한국 개신교에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인간의 자리에 낮아져 있으면서 신앙하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 생각과 느낌은 신의 생각과 느낌과 같지 않다. 다를 때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만 기억해도 우리는 신의 자리에서 내려 올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 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의 권위와 신비는 더욱 훼손되고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체험을 하나 이야기하면, 대학생 선교단체에 있을때 어떤 선교사의 선교보고를 사람들이 한달전부터 은혜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더라. 나는 말씀을 잘 전하고 성령의 임재가 있으면 은혜받는거지~뭘 그렇게 은혜받게 해달라고 극성스럽게 기도들을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여하튼 나는 기도를 안했고 선교보고대회때 그 선교사의 설교는 정말 너무나 형편없었다. 그런데 재밌는건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들은 다들 너무나 은혜롭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기도의 위력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집회에 참석한 초신자들이나 신입생들도 다 나처럼 느꼈더라. 그리고 몇 년 후 그 선교사의 온갖 추태와 비리가 폭로되었는데...그러고 보면 그 당시 아무 감동도 못느꼈던 내가 가장 '영성'이 좋았던게 아닐까 싶다. ㅋㅋ

'신앙의 신비'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하는데...개신교인들에게 그런 신앙의 신비를 느끼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들은 모두 '뚜렷한 정답'을 알고 있어서 모호함이나 신비따위는 찾아볼수가 없으니까. 그들의 뚜렷한 신앙관에 난 점점 더 동의할 수가 없다. [2018년 8월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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