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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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ㅍㅍㅅㅅ, 뉴스앤조이

아무나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에쎌디 2017. 11. 13. 09:57

※ 어제 명성교회가 세습을 완료했습니다. 낮에 사임하고 저녁에 위임하더군요...굉장히 급하게 처리하는 것보니 자기들도 뭔가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가...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하나 목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절대 명성교회로 부임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사람인데요.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많은 분들이 지금의 개신교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 비판 중의 상당수는 결국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절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성교회 소식을 들으며 2014년 4월에 쓴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나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몇 주 전에 우연히 기사를 검색하다 이 한장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곤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뭔가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내가 사진 한 장에 왜 이런 남사스런 눈물을 흘린건지 생각해 보았다. 돌이켜보니 아마 내가 그토록 보기를 원했으나 볼 수 없었고, 사무치게 그리웠으나 만날 수 없었던 참 '성직자'의 모습을 너무도 오랜 만에 본 감동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진은 우크라이나 시위대와 진압경찰과의 충돌 한가운데 서있는 동방정교회 신부들 모습

'변질된 성직주의, 성직자는 왕?


난 지금껏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너무나 많은 ‘개념없는’ 목회자들 땜에 큰 상처와 아픔을 겪었기에 교인과 성직자를 엄격히 분리해서 서로 다른 기준과 책임을 요구하는 ‘성직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감과 분노가 있었다.


적어도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경험한  ‘성직주의’는 일반교인과 성직자의 역할의 차이만을 의미하는 수평적 직분의 개념보다는 위계적 계층구조 (hierarchy)의 귄위적 상하개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많은 개신교 목회자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컫는 교인들 위에 특별한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려 든다.


그리고는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하나님의 종'으로 높기 때문에(낮은자가 높은 자라는 역설?) 성도들을 존중하고 섬기기 보다는 명령하고 대접받고 무슨 짓을 해도 용납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목사가 딸 뻘 되는 여성도 몇 명쯤 건드리는 성범죄를 저지르건, 수십억에서 수백억 헌금을 횡령하건, 학력 사칭과 논문을 대필하건 자신의 범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정죄하고 심판할 수 있다고 강변하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부패 목사들 일일이 심판하시느라 하나님은 참 피곤하시겠다.)





예를 들어 3,000억짜리 교회건물을 지어 지탄을 받은 강남의 모 대형교회는 누가봐도 '왕 되신' 하나님이 아니라 '왕 되신' 오아무개 목사를 위해 정관을 개정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정말 가관이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성도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하질 않나, 정작 성도가 자신이 낸 헌금이 투명하게 사용되는지 ‘재정장부 열람’을 하려면 공동의회 투표를 소집해서 2/3이상 찬성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보통 등록 교인수 대비 실제 출석교인은 2/3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투표가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도의 재정적 의무는 당연하지만,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성도의 권리는 철저히 박탈하고 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목사는 왕이고 성도들은 목사와 교회를 섬기는 노예라는 이야기 아닌가?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교회에 만연한 현실의 성직주의는 성직자만을 위한 이익과 권력의 욕망을 채우는데 성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성직주의 아닌가?



'성직주의'가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성직'은 말 그대로 거룩한 직분이라는 뜻이다. 거룩함이란 의미는 '구별되다'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결국 성직자는 이 땅의 속물적 가치관, 돈과 권력이 최고인 가치관과 다르게 ‘구별된’ 기준으로 사는 존재들이란 뜻 아닐까? 그러기에 그들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맘몬'(황금의 우상)과 권력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공평과 정의, 사랑'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을 지배하는 '돈과 권력'의 ‘이기적 욕망’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화합할 수 없기에 어쩌면 성직자들이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한 사회나 공동체의 대다수가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로 작동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이 가장 ‘비인간화되는 삶’을 향해 나아갈 때,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임 없이 그 사회가 듣기 싫어하는 ‘다른 메시지’, 즉 가장 양심적이고 올바른 선지자적 외침을 외치며, ‘다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한 성직자의 대표적인 예가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이었고 신약에서는 선지자 세례요한과 종교지도자들의 위선과 부패를 드러내 성전을 뒤엎었던 예수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성직자의 소명과 역할은?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엄밀히 말하면 개신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직자'의 길을 가겠다는 목회후보생들이 목회현장에서 발견하는 교회의 비리,  담임목사의 비리 앞에 자기 생계와 앞날의 안위를 위해 침묵한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긴다며,주의 종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경건함으로 자기를 포장하면서) 정권의 폭압과 눈에 뻔히 보이는 온갖 불의 앞에서도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불의에 침묵한다. 거대기업과 자본의 횡포로 무수히 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그 기업 사장이 '장로'이고 그 기업이 '크리스천 기업'이라며 그들의 편에 선다.



사회 속에서 그 어떤 이해관계와 권력관계에도 자유로워야 할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양심의 소리, 선지자적 목소리’는 다 어디로 갔는가? 영향력 있는 모든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노예가 되어 진실을 왜곡하는 이 나라에서 불이익을 기꺼이 감당하며 용감하게 진실을 외치는 성직자들은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성직자'가 '성직자'로 구별된 이유는 다수의 힘없는 인간들을 착취하며 이 땅을 다스리는 , 권력, 모든 욕망의 우상인 '맘몬과 바알' 위세 앞에 무릎 꿇지 말고 하늘의 원리로 이 땅의 잘못된 것을 싸우고 고치라고 구별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싸움을 위해 끝내 그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면 기꺼이 피를 흘려 그 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만들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이 성직자 아닌가? 우크라이나 성직자들이 폭력과 갈등의 최전방에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져 십자가를 들었듯이 말이다.





성직자들이 남발하는 ‘공허한’ 진통제와 처방전



그러나 대부분 성직자들은 자신이 피를 흘려 싸워야 할 싸움의 공간을 '성도 개개인의 영혼 안'으로만 한정하며 정작 성도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 속의 온갖 문제는 기꺼이 외면한다. '모든 문제는 당신이 마음먹기 달려있고 결국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공허한 진통제와 천국행 처방전을 남발하면서 말이다. 그 약들이 얼마나 효과가 없고 공허한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이자 세대별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각종 지표가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한다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은 자살 공화국이라는 이 극명한 모순이 말하는 게 무엇일까? 결국 성직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자기 배를 채우고, 자기 권위를 세우기 위한 성직주의가 아니라 거짓에 맞서 진실을 말하고 어그러진 공평과 정의를  위해 가장 큰 불이익을 감수하고 앞장서는 성직자들이 내세우는 '성직주의'라면 기꺼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 게 아니라 종교를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뿐이라면 세금이라도 좀 내던지...



성직자다운 '성직자'들을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성경 속 예수님으로만 만족을 해야 할까?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예레미야서 33:15 새번역]

‘나를 따르라!’ ...아무나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흔히 보수적이고 경건한 교인들이 보이는 ‘성직자’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의 미덕과 존경심을 보이지 않고, 그들과 다른 생각과 견해를 직설적으로  쏟아 내거나  목회자들에게  덤볐더니(?), 내가 성직자들을 정말 우습게 아는 교만한 교인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다.


억울하고 울컥할 때가 많지만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교만한 건’ 맞다. 그러나 나는 ‘성직자’들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경외감을 가지고 존경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진짜 ‘성직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종교적 거룩함으로 포장한  무능력하고 비굴한 ‘종교 직업인’들은 진심으로 무시하고 경멸한다. 많은 교인은 ‘목사’라고 하면 다 똑같은 부류로 보지만 난 ‘목사’들 중에도 ‘성직자’와 ‘종교 직업인’을 구분해서 대우할 뿐이다.


절대 생계를 위해서나,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나, 권력을 위해서는 들어서지 말아야 할 길이 ‘성직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만큼 성직자는 엄중한 책임감과 용기, 희생, 헌신이 요구되고 심지어 자기 가족과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더라도 절대로 성직자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을 사람만이 성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제자 마태를 부를 때 하신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복음 9:9 개역개정]



난 이 구절을 다시 읽고 묵상할 때마다, 성직자가 아닌 그저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도 너무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며 깊은 탄식이 나올 때가 많다. 일개 성도도 이런 부담감을 느끼는데 목회자들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고난을 겪으시며, 결국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다’ (누가복음 4:18, 19)


지금의 교회와 성직자들이 주로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가난한 자?, 포로(노예)된 자?,  눈먼 자?, 눌린 자?’  


아니면…


‘가진 자?, 노예삼는 자?, 눈멀게 하는 자?, 억압하는 자?’   



‘국민일보’만 좀  보지 말고 ‘일반 신문’과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좀만 뒤져보면 지금의 교회와 성직자들이 주로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저 두 부류의 사람 중 누구 편을 드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직자 여러분,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를 따르라!’


예수님이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제발 이 질문을 충분히 심사숙고해 보고 기꺼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직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가짜 성직자는 차고도 넘치니까 말이다.

<2014년 4월11일 ㅍㅍㅅㅅ 기고> ※ 제가 생각할때 굳이 시위하고 데모하지 않아도 한국 개신교를 개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짓을 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목회자들이 전횡을 행사할 때, 그 교회를 떠나거나 떠나는 것도 싫다면 헌금이라도 내지 마십시오. 아주 효과적인 저항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개신교의 자정작용과 개혁을 위해 목회자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신학교를 가지 않으면 됩니다. 본인이 아무리 뜨겁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물어보세요. 내가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면 어떻겠냐고?...정직하게 대답해줄 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진실의 소리를 들려줄 겁니다. 제 주변에도 본인이 너무 사명감에 사로잡히고 뜨거워서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던 후배들이 몇 명 있었는데요.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린 케이스가 꽤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다 신학교를 가더군요. 한국 개신교의 개혁과 자정이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 뭔가를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하지 않는 길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한국 개신교의 발전을 위해 목회자가 되지 않는 것도 커다란 유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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