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웬델 베리
- 감자탕교회 이야기
- 치유와 공의를 위한 TF팀
- 존 폴킹혼
- 피터 웨이슨
- 프리머티브 테크놀러지
- 지식의 역습
- 오리지널스
- 삼일교회
- 삶창
- 도쿄 지진방재 매뉴얼
- 기록되지 않은 노동
- 도큐 방재
- 윌리엄 윌버포스
- 세월호
- 목회자2.0
- 전병욱
- 안식일은 저항이다
- 삼박자축복
- 확증평향
- 와비파커
- 오중복음
- 티타임즈
- 코어 덴트
- 언아더북스
- 구름이
- RES MED
- 바이오 가드
- 꽃들에게 희망을
- 카카오톡 루머
- Today
- Total
목록끄적끄적, 쓱쓱 (30)
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기도의 폐해’라니 이 무슨 반기독교적인 개념인가? 내가 생각해도 수위가 좀 쎈 표현이다 . ㅋㅋ 그러나 나는 한국교회가 그토록 목숨거는 온갖 새벽기도와 기도회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기도의 열정과 기도에 쏟아붓는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을 세계적으로 비교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세계 1,2위 안에는 들 나라가 한국이 아니던가? 어느동네, 어느지역에 가도 계절마다, 분기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하지 않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이상하리만치 윤리적 부패와 세습, 목사들의 성범죄, 반지성주의, 반사회적 경향이 강하다. 사랑과 관용에는 더디고 둔감하며 혐오와 차별에는 민감하게 앞장선다. 원래 예수나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런것이라면 할말이 없으나...성경이나 예수의 삶을 보면 또 그런것..

한국 개신교가 엉망진창이 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난 그중의 하나가 ‘신앙의 확신’을 강요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강한 확신’의 신앙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강한 확신의 문화에 길들여지다보면 합리적인 질문을 할수도 없고, 자기 신앙뿐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에 대해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의심하고 성찰하는 문화가 생길 수가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질문과 의심’이 불가능한 일방적인 소통과 세뇌에 가까운 주입식 신앙교육만이 난무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교회 장년부에서 집사님들이 성경공부를 할때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 세대주의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목사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런거 몰라도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
1월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옮겨 봅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건강관련해서 아래 글은 블로그에 꼭 옮겨놓고 싶었거든요^^새해 계획 중 건강과 관련된 소소한 실천계획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밥 천천히 먹기(15분이상), 둘째 12시간 공복 유지하기, 셋째 하루 20분 정도는 꼭 운동하기... 그중 하루 20분 운동하기는 작년부터 일주일에 3-4일은 지켜온 것 같네요.사람마다 성향은 다르겠지만 ‘제대로’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마음으로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해서 다니는 것보다 집이나 직장에서 짬날때 조금씩 운동하는 전략이 내게는 꽤나 잘맞았고 실천하기도 좋았습니다. 그냥 생각날 때 직장에서 스쿼트를 하거나, 퇴근해서 좀 피곤해도 ‘로잉머신’을 20분씩 타는 운동을 통해 운동효과를 꽤 보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데 '영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봤다. 그분의 글 자체에 공감을 못하거나 그분을 저격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그냥 그런 표현과 워딩이 너무 낯익지만 평소부터 거부감이 있어서 관련된 생각을 적어본다.교회에서는 매우 친숙한 표현이고 습관적으로 쓰지만 교회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언어들을 '종교방언'이라 칭한다면, 나는 한국교회의 종교방언이 건강하지 않은 신앙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본다.대개 그런 종교방언등은 곤란한 상황을 퉁치거나(기도할께), 책임을 모면하거나 (기도해 볼께요), 정확한 평가를 하면 상처받을께 두려워서 (은혜로왔어요) 두리 뭉실하게 넘어가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그런데 그런 정도의 종교방언등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인데~문제는 측정할 수 없고 객관..
어제는 어머니를 보러 요양병원을 갔다가 정말 너무 속이 상했다. 마침 내가 도착한 시점에 어머니는 또 소리를 지르며 퇴원하겠다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우기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신체적으로 당신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반증이다.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때는 의식만 겨우 있을 정도로 꼼짝도 못했는데 이젠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소리지를 정도의 에너지가 생긴거니까. 그러나 건강이 좋아지면 정신의 피폐함과 망상은 살아난다. 이 요양병원 원장과 간병인이 작당을 하고 자기를 괴롭히려 음식을 한달째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코로 수액과 영양액이 들어간지 한달 가까이 된 이유는 당신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누웠다가 앉지도..
'빛과 소금' 잡지 2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청년들'이라는 꼭지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1년동안 IT쪽 종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해서 싣는다고 하네요. 제가 운좋게도 첫타자가 되었습니다~^^ ㅋㅋ맨날 문제많은 개신교 목사나 교회 관련 인터뷰만 하다가 IT쪽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기획이 맘에 들어서 '청년'이 아닌 장년이지만 인터뷰했네여~^^ 인터뷰당할 만한 깜냥은 안되지만 IT업계에 오래 있았으니 그 업계의 고충과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차원에서 인터뷰했습니다. 한참 감기몸살로 시달릴때 인터뷰한거라 사진에도 아픈기색이 역력...ㅠㅠ; 인터뷰 장소는 일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독서모임 동아리방인..
삶의 버거움과 무게 앞에 지나치게 낙심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이런 생각을 참 자주 하곤 했다. 그만큼 나만 삶이 더 버겁고 감당하기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였겠지...그때마다 절망하고 낙심하는게 인지상정이라 항상 낙담의 늪을 한동안 헤매지만 한 편으론, 아무리 힘들게 느껴져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없을까 고민하고 찾아본다. 뾰족한 정답이라고 할만한 비결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는 어떤 '집착'을 버리는게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보통 절망이라는 것은 기대치가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인데 그 기대치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의 영향이든 내가 경험한 삶의 경험치에 의한 기준이든 ‘어떤 기대치’에 집착이 있는데 그 기대치를 채우지 못할 때 절망은 깊어지는 것 같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을 의인화할 수 있다면, 삶이 나에게 '겸손'을 요구할 때가 꼭 있는 것 같다. 너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이라는 걸 인정하라고...네가 살고 싶다면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겸손을 배우라고 다그치는 것 같을 때가 있다.그럴 때, 인생의 요구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해질 수 있는 사람...그럴 때 사람은 진짜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것 같다.그래도 삶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바란다. ※ 어제 페북에 끄적거린 글인데요. 픽사베이라는 무료이미지 사이트에서 저 이미지를 봤을 때 떠올랐던 글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을 보아도 항상 가혹한 인생의 시련과 고난이 닥칠 때가 있더군요. 그때 겸손하게 무릎꿇..
난 직장생활 3년 정도 하다가 프리랜서로 전업해서 이것 저것 오만가지 시도를 해보다 정말 힘든 세월 10년 넘게 보냈다. 손대는 일마다 망하는 걸 보면서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매우 놀람...그리고 나서 깨달은게 있다. '직장을 떠나 스스로 사업을 할때 정기적인 수입(수익)을 창출하는게 생각보다 엄청 어렵다' 그런데 이 단순한 사실을 안정된 직장에서 오래 다니다 새롭게 사업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오랜기간 직장인으로 지내다가 새롭게 사업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낙관주의 같은게 있는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직장생활 버텼으니 스스로 이런 '쥐꼬리'정도보다는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을 맞닥뜨려보면 그 '쥐꼬리'가 생각보다 큰 쥐꼬리였다는 걸..
사람들은 흔히 유명인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탁월한 성취, 업적을 보고나서 그 화려하고 대단한 '성취의 순간'만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가 '그곳'까지 걸어가야 했던 험난한 여정과 고생길이 능히 짐작될 것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이든 동네 뒷산이든 결국 '정상'을 향해 내딛었던 '한 걸음'들이 쌓인 결과로 그 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무도 그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그는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던 것이고, 그 걸음들의 결과로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그 곳'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간과한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평에 눈을 떠가기도 하지만, 다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