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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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저항이다(월터 브루그만)-파라오의 시스템을 떠나는 신앙

에쎌디 2017. 10. 15. 19:15

저는 한국사회가 쉼과 여유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경쟁, 단지 입에 풀칠하는 데도 과도한 노동과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분위기, 뭔가 다른 삶의 방식과 재미난 삶을 살고 싶긴 한데...그런 생각과 상상을 하는 것조차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극한 생존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북유럽의 선진국이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칭송받는 히말라야의 부탄 같은 국가랑 비교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분위기는 '교회'에까지 전염되어 있습니다. 과도한 헌신과 쉼이 없는 주일 사역의 굴레 속에 주일 저녁이 직장생활하는 평일날 저녁보다 더 힘들고 피곤하다는 교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물론 예배만 드리고 비교적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교인들도 굉장히 많죠. 하지만 '교회'에 대한 사랑과 봉사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소위 '독실한' 개신교인들은 항상 헌신하고 봉사하는 교인들에게만 몰리는 사역의 부담이 더욱 몰리곤 하죠. 


저 또한 20여년 넘게 그런 사회생활과 교회생활을 병행하다보니,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엔 너무 피곤해서 멍한 기분으로 한 주를 시작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난 누구?...여긴 어디?...뭘 위해서 이렇게 사는거지?'


뭐든지 빠르게 변하고, 빠르게 적응해야만 하고, 분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은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다보면 정작 '뭘 위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려고 나는 이렇게 사는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바쁘고 정신없는 삶은 무엇보다 '생각을 정리하고 바른 판단을 내릴'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내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건지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거죠.





저는 미대출신이라 실기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데생실기시험을 볼 때 중요한 게, 그리다가 중간 중간 뒤로 가서 내 그림을 살펴봐야 한다는 겁니다. 중간에 자주 뒤로 가서 그림을 살펴보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그리더라도, 형태가 엉망으로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자주 뒤로가서 그림을 살피지 않으면 '아그리파'를 그렸는데 아그리파 삼촌이나 아들(?)같은 인물이 그려져 있거나, 비너스를 그렸는데 왠 낯선 아주머니가 그려져있는 참사가 생기곤 하죠. 특히 실기시험은 보통 3-4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형태가 이미 망가져 있는 상태에서 진도가 나갔으면 그걸 다시 되돌리고 수정하기란 불가능합니다.

※ 좀 닮은 것 같긴 한데...ㅡ.ㅡ; (오른쪽이 아그리파 아저씨)


우리 삶도 마치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주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가지지 않으면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진 상태에서 바꿀 수 있는 시간조차 없게 되는거죠. 누구에게나 인생은 '시간제한'이 있으니까요. 저는 삶의 올바른 방향을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주일날의 안식과 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 는 구약에서 안식일 준수의 전통과 의미를 꼼꼼히 따져 현대적인 의미로 다시 해석하고 적용해 보는 책입니다. '시장의 여러요구'에 인간의 삶 전체를 축소시켜 버리는 이 시대의 참을 수 없는 행태 속에서 독특한 신앙인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임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과도한 노동과 쉼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는 이 시대 한국이라는 맥락 속에서 '월터 브루그만'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은 마치 한국을 위해 이 책을 쓴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 옵니다. 모세시대 '파라오의 시스템'을 끊없는 팽창과 이윤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동일하게 규정하며, 파라오 시스템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겁고도 진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안식일의 원리를 따른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다른 삶을 즐기며 구가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전 그래서 이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그 내용에 해당하는 본문을 인용해 봅니다. 

'우리 시대에서도 파라오의 시스템과 같은 곳에서 떠나야 하지만, 이 떠남은 지리적 떠남이 아니다. 도리어 이 떠남은 정서와 제의와 경제면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 떠남은 그저 생각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다. 따라서 네 번째 계명이 말하는 안식일 지킴은 파라오의 시스템을 뒤집어엎으시고 출애굽을 가능케 하신 첫 번째 계명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이요, 두 번째, 세 번째 계명이 말하는 하나님, 곧 쉼의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동이다. 안식일은 실제로 그런 시스템을 벗어 버림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사랑이 오고 가는 이웃 사이의 사귐이 우리 삶을 규정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타당한 이유 때문에 신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안식일을 삶을 규율하는 원리로 여겨 왔다. 바로 이런 타당한 이유 때문에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삼아 자율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계명을 시내산에서 받은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도 가장 어려운 계명으로 여길 수 있다. 진보적인 사람이든 보수적인 사람이든, 우리는 파라오 시스템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쉼이 없음을 떠나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 절박하면서도 어렵다. 우리 모든 모터가 벽돌을 찍어 내는 속도로 움직이게끔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늘 불안에 떨며 더 많은 벽돌을 찍어 내려고 애쓰는 이런 삶을 잠시라도 멈추면, 우리가 지는 "짐은 가벼워지고" 우리에게 지워진 '멍에는 쉬워진다." 옛적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얼마든지 다른 삶을 즐기며 구가할 수 있다.'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 사람)/ 월터 브루그만-
1장 [안식일과 첫째 계명] 중에서   



책은 얇고, 술술 읽히지만 깊이도 있고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쉼없이 오늘 하루도 힘들었던 분들께 참된 안식과 쉼이 있기를 바랍니다.



안식일은 저항이다 - 10점
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복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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