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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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쓱쓱

신앙인의 시선

에쎌디 2017. 10. 31. 10:59

누구에게나 비슷한 이야기겠지만, 내가 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내 마음과 삶의 형편은 낮은 곳에 있었다. 얼핏 지나가는 친구의 위로든, 깊이 공감되는 책속의 문장이든, 꽃을 닮은 신기한 곤충의 모양이든... 신의 실존이 느껴지는 흔적은 모호한 위로와 증거들을 통해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 내가...이런 개떡같은 삶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어떻게든 살아야할 이유가 있단 말이지?'

천지를 만드신 신이 있는데...이렇게 낮은 곳에 있는, 못나고 성격나쁜 인간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종종 기억난다. 그런데, 신앙을 갖게 된후 내가 좀 살만해지자, '정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를 갖고만 있다면 무엇을 요구하든 그걸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저 높은 산을 올라가기만을 바라고 계신다는 자기 최면에 물들었다. 그 최면은 구체적으로 성경구절을 통해 더 확증되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4:13 / 새번역]

그래서, 나름 자기개발과 신앙을 접목한 저자들로 유명한 사람들의 책을 죄다 주워 읽었던 것 같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100권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 나는...의지박약, 집중력부족, 저질체력, 끈기부족 등...이 시대가 요구하는 '성공인재'의 요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걸 뼈저린 실패와 경험으로 통감했다. 기도도 열심히 했지만 다행히(?) 그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셔서 내 한계를 알게된거다.

그리고, 뼈저린 자기발견이후 그저 하루 하루 현실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고 성경을 다시 읽어나가고 공부해가면서 빌립보서 4:13절이 '무한능력'을 약속하신 성경구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빌립보서 4:11~14 / 새번역]


기독교인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중에서

놀랍게도 사도바울이 말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고 말한 고백은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말한 '무한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자기 자리에서 낮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고난에 동참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만해지니 내 신앙의 시선은 '세속적 부와 성공을 의미하는 정상'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가장 큰 감동이자 이유가 되었던 것이 '이토록 낮은 곳에 있는 나'를 무려 '천지를 만드신 신'께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감동이었는데 말이지...정작 나는 신의 '낮은 시선'에 감동했으면서 내가 살만해지니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있지 않았다.





난 '신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하거나 글쓰는 것을 정말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정말 하나님이 내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나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셨다면, 그 사랑을 받은 자녀가 어디를 바라보기 원하실까? 이제 살만해졌으니 정상을 바라보기 원하실까? '그래 그래 내새끼 잘한다 잘해~' 이러시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나를 향해 박수쳐주실까? 아니면 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슬퍼하고 아파하며 힘들어하는 이들을 바라보길 원하실까?

한국교회는 '하나님 믿으면 비천한 당신이 살만해지고,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그럼 우리들보다 낮은 곳에서(지위나 계급을 말하는게 아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누가 돌보죠?'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 몫이죠' (아...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나서도 계속 가장 궂은 일을 할 운명이란 말인가..불쌍해...@.@;)

아직도 빌립보서4:13 절 말씀을 인용하며 'You Can Do It!' 또는 'We Can Do It!'을 독려하는 동영상이 무한공유되는 현상을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1등하지 않아도 영광받으신다. 당신이 무엇을 그리 잘하거나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당신 자녀들의 존재만으로 영광받으신다. 하나님은 들에 핀 백합화나 이름모를 곤충을 통해서도 영광받으신다. 하나님이 자녀 1등에 안달복달하는 '극성 부모'쯤 되는것 같은 시선은 이제 좀 거둘때도 되지 않았을까?

구구절절 길게 썼지만 난 어떤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정말 간단한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난 참된 신앙을 갖고있는 사람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데 '빌립보서 4:13'말씀을 인용하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 / 새번역]
<2015년 5월 페이스북에 끄적인 글> 이 글이 씨앗이 되어 한 달 뒤에 '너는 특별하지 않단다' 라는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글 읽고 남겨주시는 공감버튼 하나, 댓글 하나는 제게 글을 쓰고 싶은 원동력이자 기쁨이 됩니다~^^(로그인 없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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