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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인내하라 본문
마음 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인내하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라.
답을 구하지 말라.
그것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핵심은 모든 것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질문들을 살아라.
그러면 서서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먼 훗날 그 답을 살고 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언젠가 책에서 읽은 문장인데 온통 제 마음을 사로잡은 명문이었습니다.
효율과 성과 중심의 정보화 시대가 되다보니, 우리는 매사에 너무 빨리 '정답'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찾아보지 않고 '정답'을 찾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좋기만 한 것일까요?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서, 너무 빨리, 너무 이른 나이에 말과 머리로 '정답'을 자신과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잣대로 너무 빨리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더군요. 주로 교사와 목사들이 많은데, 교사들이 조금은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들은 그래도 '질문'을 금하진 않기 때문이죠.
제가 만나본 많은 목사들은 '정답'을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들은 명확한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질문'하는 행위자체를 권위에 대한 도전과 믿음의 부족으로 여기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유일한 진리이며,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 개신교는 특히 더 '정답'에 대한 강박이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어디 그렇게 딱 떨어진 '정답'만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아무리 찾아도 정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게다가 인생살이에 온통 명쾌한 '정답'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재미도 없고, 지루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삶의 신비'가 없어져 버리겠죠. 인생의 신비는 대부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위에 존재하니까요. 저는 그런 모호한 '삶의 경계'야말로 우리가 인생의 신비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떨기나무가 불타는데 떨기가 타지 않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원인을 알아보려고 다가갔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출애굽기 3:2,3 / 새번역>
성숙하고 노련한 교사와 목사라면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삶으로 살아내면서' 답을 구하려 할 것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방황하는 시간조차 소중한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그들은 알 것입니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모순 속의 현실에서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지혜로운 인생의 스승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태도는 단지 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미덕은 아닐 겁니다. 정답을 알지 못해도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태도는 '순례자'로 이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정답을 알 수 없는 그 모호하고 신비로운 곳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날지 모릅니다. 신앙의 신비는 항상 그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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