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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어느 집회에 참석했는데 '영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봤다. 그분의 글 자체에 공감을 못하거나 그분을 저격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그냥 그런 표현과 워딩이 너무 낯익지만 평소부터 거부감이 있어서 관련된 생각을 적어본다.교회에서는 매우 친숙한 표현이고 습관적으로 쓰지만 교회밖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언어들을 '종교방언'이라 칭한다면, 나는 한국교회의 종교방언이 건강하지 않은 신앙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본다.대개 그런 종교방언등은 곤란한 상황을 퉁치거나(기도할께), 책임을 모면하거나 (기도해 볼께요), 정확한 평가를 하면 상처받을께 두려워서 (은혜로왔어요) 두리 뭉실하게 넘어가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그런데 그런 정도의 종교방언등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인데~문제는 측정할 수 없고 객관..
어제는 어머니를 보러 요양병원을 갔다가 정말 너무 속이 상했다. 마침 내가 도착한 시점에 어머니는 또 소리를 지르며 퇴원하겠다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우기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 자체가 사실 신체적으로 당신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반증이다.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때는 의식만 겨우 있을 정도로 꼼짝도 못했는데 이젠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소리지를 정도의 에너지가 생긴거니까. 그러나 건강이 좋아지면 정신의 피폐함과 망상은 살아난다. 이 요양병원 원장과 간병인이 작당을 하고 자기를 괴롭히려 음식을 한달째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코로 수액과 영양액이 들어간지 한달 가까이 된 이유는 당신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누웠다가 앉지도..
한국교회 목사들과 교인들의 온갖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범죄와 기독교 신앙이 어쩜 그렇게 '찰떡 궁합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는지 내게는 항상 일관된 관심과 분석의 대상이다. 너무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은 내편'이라는 아전인수적 신앙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가사나 시중에 나와있는 QT교재를 봐도 대부분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한국교회 비리나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참담한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이나 공유하는 글들 중에 이런 패턴의 고백도 자주 보인다. '이런 어두운 시대에 저는 주만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현실 속에 참담한 심정으로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