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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이해안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관찰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있다보니 그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깊이 생각할 때가 있다. 주변에 자꾸 잘못된 선택, 어리석은 결정을 해서 잘 안풀리는 후배나 지인들을 보다보니 그들의 공통점중 하나를 깨달은 것이 있다. 한때 엄청 성공했다가 실패한 경우든,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실패한 경우든...반복된 실패가운데 지쳐있는 사람들은 '늦었으니까 어떻게든 한방의 역전을 해야한다'는 심리가 많은 것 같았다. 어쨌건 실패와 시행착오로 시간을 허비했으니, 더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자꾸 단기간의 성과나 상황역전을 바라는 요행수를 바라거나, 위험이 크지만 성공만 하면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에 몰입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다..
※ 2017년 2월에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사랑보다 혐오, 관용보다 차별을 앞세우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글입니다. 예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너그러움, 자비, 사랑의 이미지가 왜 개신교인들과 교회를 생각할때는 영 어색한 것일까요? 사랑과 관용의 예수, 혐오와 차별의 교회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간디의 이 말처럼 지금 이 사회에서 예수는 좋은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는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간디가 정확하게 지적했듯 예수와 그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닮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꽤 많은 차이를 분석..
요즘 계속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매섭지만 출근하기 전 20분, 잠들기 전 20분 정도를 집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거창한 운동은 아니고 푸쉬업이나 스쿼트, 덤벨운동, 유산소 운동으로 '트위스트 런'이라는 기구를 이용한 운동이다. 운동에 대한 습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유는 '운동의 목적'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대나 30대만 해도 운동의 목적이 '멋지고 근사한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 '건강'이 삶의 기본요소 중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 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날마다 그 고통을 나눠지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나중에 수습이 힘든 '고통'을 겪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으니 주변 친구들이나..
※ 2014년에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지금도 저는 자연속으로 들어가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용기가 없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더 그런 꿈을 키웠던 적이 있죠. 스콧니어링의 삶은 자연속에 들어가 은둔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매력적인게 아니라 자연속에서 생태적 삶을 살면서도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고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을 비판하며 시대의 부조리를 깨우치는 글과 강연활동을 계속 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속에서 살되 세상을 염려하고 참여하는 그의 삶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자연속에서 살되, 세상을 등지지 않으며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선지자의 삶이 이런 삶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때론 책을 읽다가, 최근에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생각과 정..
※ 2012년 1월에 페북에 올린 글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권위주의와 그릇된 계급의식, 성직주의는 비단 나이많은 목회자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 친구녀석은 목사가 되더니 사적인 자리에서도 존댓말을 하라고 요구하더군요. 존댓말은 커녕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거의 연락을 안합니다. 나이많고 노회한 목회자들의 권위주의도 답이 없게 느껴지지만 젊은 목사들의 그런 모습은 정말 갑갑하더군요. 우리 교회에 청년들에게 인기 많은 어떤 젊은 목사님이 "상위질서의 허물을 입에 담지도 마세요 순종하세요"라는 글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 ※ 상위질서?... 성경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그의 글에 100명이 넘는 청년들이 '좋아요'를 눌렀다...한국교회의 미래가 암담하다...ㅠㅠ;;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들은..
※ 2011년 12월에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당시 한참 나꼼수 팟캐스트 방송 열풍이 불때였죠. 마침 김동호 목사님이 나꼼수 방송을 3분 정도 듣고 비판의 말을 페북에 쓴 것이 뜨겁게 화제가 되었던 때의 글입니다.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주는 것만이 신앙적가치라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요. 십자가의 의미가 과연 그런 의미일까요? 사랑과 공의, 용서의 의미를 깊이 분석해본 글입니다. 무조건 덮어주는 것이 사랑인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린, 모두 헛점 많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이다.신앙이라는 것이 이성과 논리로서만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 각자에게 임하는 신비한 ‘회개(회심)의 체험’ 때문이다. ‘회심의 체험’은 그 양상과 구체적인 모습이 다 다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
※2016년에 쓴 글인데요. 기독교를 '카톡교'라고 비난할 만큼 거짓루머,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는데 '교회단톡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걸 저도 직접적으로 몇 번 봤는데요. 왜들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퍼다나를까 생각하다 어느날 화가나서 페이스북에 쓴 글을 좀 다듬어 기고한 글입니다. (그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런 스트레스로 화난 교인들이 많았는지 420번 넘게 공유 ㅎㅎ) 재밌는 건 이글 쓰고 몇 달지나서 적어도 2년은 돌았던 황당한 루머를 어느 친구가 교회단톡방에 또 올리더라구요. 아는 장로님이 주신 글이라며...ㅠㅠ; ※최근 돌고있는 이런 교회카톡루머를 주제로 다룬 언론기사- 기독교발 루머는 이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악성 루머의 진원..
※ 일전에 어떤 분이 독서모임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 궁금해하셔서 알려드렸던 내용입니다. 독서모임의 형태와 운영방법은 다양하게 있는데요. 저희 모임은 한권의 책을 두달에서 석달까지 같이 천천히 읽어나가는 모임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편에 속하는 게 '독서모임용 사무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토즈'같은데서 모임을 하다가 너무 불편한 점이 많아서 회원들의 회비를 걷고 몇 명이 보증금을 내서 무려(?) 1년 반동안 적당한 사무실을 찾다가 정말 싸고 좋은 곳을 찾아서 임대한 케이스인데요. 따로 동아리방같은 독서모임 사무실이 있으니 좋은 점이 너무 많더군요. 그동안 저희 모임의 노하우를 정리한 글입니다. 1. 저희 독서모임은 '슬로우 리딩'모임입니다. 한달에 한권을 끝내거나 한권 끝내고 독후감이나..
*2015년 페북에 쓴 글인데 요즘 부쩍 자주 생각나는 주제입니다. 언제 한 번 깊이 묵상해서 정리하고픈 주제네요. 인간은 끊임없이 신의 완전함과 전능성을 바라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생의 한계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글입니다. 요즘 자주 묵상하는 주제 중의 하나다. 희망, 신의 전능함, 인간의 무력함, 인생의 고달픔...뭐 이런 주제들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생각이 정리되진 않았는데 긴 글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가지 어렴풋이나마 생각의 결이 잡히는 것중의 하나는 신의 전능함을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지만(마블의 슈퍼히어로들 처럼), 신은 도리어 인간의 한계 많은 삶 속에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이 통제되지 않는 거대..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거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지역에 있는 조그만 동네 서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있는 숙대 앞에도 작은 서점들이 순차적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이 있었죠. 그런데 대형서점과는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고유한 시선과 기준으로 책을 선별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독립서점'들이 그래도 꾸준히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마존 때문에 지역서점들이 1995년과 2000년 사이에만 43%가 문을 닫을 정도로 급감했다가 최근에는 놀랍게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맹점 형태의 서점이 아닌 독립서점이 2009년 1651개에서 2016년에는 2311개로 늘어났다고 하네요. (관련기사: 아마존도 할 수 없는게 있다. 동네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