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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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위험을 제거하고 꽃길만 가면 행복할까?

에쎌디 2017. 11. 16. 14:30

인생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을 걸어가는 여정이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그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싶어한다. 불안해하지 않고 꽃길만 가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정말 모든 불안의 요소들, 잠재적 위험을 없애는 것이 가능한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런 요소들을 모두 없앴을 때 인간은 정말 행복할까?

난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불안과 위험이 없는 지루한 인생길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배우기보다 퇴행하고 타락한다. 성경을 보면 우상숭배가 발흥하는 심리적 시작점은 '네가 이 신에게 헌신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와 불안이 해결될 수 있다'는 메세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식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모든 불안과 위험을 제거하기보다 한걸음 내 딛을 수 있는 정도의 증거를 보여주시며 계속해서 인생의 불안과 위험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신을 믿고 따라오도록 인도하셨다.


모든 불안과 위험을 한번에 없애길 바라는 이들은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지만, 인생의 불안함을 떠안으며 믿음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이들에겐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있는 것 같다. 월터 브루그만의 책 ‘안식일은 저항이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안에 맞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분이었던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심각한 불안에 빠진 행동을 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가진 금(금이 아니면 달리 뭐라도), 그들의 귀중한 귀고리,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탐내는 물건을 모아 그것으로 그들 자신의 신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공경하는 물건만 가지면 창조주가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안전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불안이 가득할 때 "신을 만드는 것"은 보통의 인간이 겪는 과정이다!'

-안식일은 저항이다-(월터 브루그만) 중에서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너무 잘 아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을 훈련시킨 방법이 ‘만나와 메추라기’였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달치 양식을 한꺼번에 주시기보다 매일 매일 하루치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주시며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한달치의 안정된 보장보다 하루 하루의 신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불안이 넘쳐나는 현대인의 삶에서 하나님이 내 평생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감당안되는 고민과 걱정에 스트레스 받을 때가 많다. 그러나 고민과 염려의 범위를 줄인다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오늘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격변하는 현실 속 불안한 인생길이지만 하루치 믿음만 있으면 가볼만 한 길이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이다.

“그들이 먹거리를 찾을 때에, 그가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며,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셨다.”

‭‭-시편‬ ‭105:40‬ ‭새번역‬‬-


인생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위험을 한번에 쉬운 방법으로 모두 없애려 하지 말고 그 불안과 위험을 ‘상수’(Constant Number)로 인정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은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스캇 펙 박사는 이런 인생의 불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고 진정한 안전이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데 있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M. 스캇 펫) 중에서




어쩌면 인생은 '자전거 타기' 같은 것일지 모른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곧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리지만 계속 페달링을 하면 온갖 험하고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한 길도 쓰러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페달을 밟고 균형을 잡는게 귀찮으니 페달질하지 않고 단번에 '영원한 안정'을 얻으려한다. '불안정'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듯이. 게다가 '돈과 권력'은 당신이 페달질하지 않아도 영원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불안’을 외면하지 말고 하루 하루 성실하게 페달을 밟으라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 하루 도사리는 인생의 ‘불안’과 ‘위험’을 외면하려는 것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게 귀찮다는 불신앙의 대표적 징후인지 모른다. 단번에 수백억의 대형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어 대대손손 ‘안정과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어떤 아버지와 아들 목사처럼 말이다. 오늘 하루도 인생의 불안정을 맛보며 하루 하루 성실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이들 모두 힘차게 페달을 밟아나가시길 기원한다.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의 자녀들이다. ※글이 좋았다면 공감버튼이나 댓글을 부탁드려요.~^^ (로그인 없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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