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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기고글-ㅍㅍㅅㅅ, 뉴스앤조이 (25)
권대원의 삐딱한 신앙이야기
※ 이글은 2014년 10월27일 교회2.0 10월 정기포럼에 초청되어 발표한 내용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와 교인들 전부 다 책임이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목사님들의 취지에 공감해서 가서 말씀을 드린 내용입니다. 일개 교인이 목회자의 자격 운운하는게 기분나쁘실 수 있겠지만, 제가 느낀 점 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교인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같이 담기위해 노력한 글입니다. 교인들이 아쉬워하고 원하는게 무엇인지 목회자들께서 아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교인을 위하는 목사와 교회를 위하는 목사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
※ 이글은 ‘복음과 상황’ 2015년 6월호 커버스토리 ‘일베와 한국교회’에 실린 글입니다. 당시 한참 일베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일베현상'의 이면에 한국교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심리와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강자,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인 숭배, 약자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었습니다.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강자 숭배의 신앙 -‘전병욱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교회의 일베스러움- 최근 몇 년간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켜온 ‘일베 현상’을 보면서 낯익은 기시감을 느꼈다. 일베들은 왜곡된 성(性) 의식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을 조롱하며, 오직 체제수호의 극우적 논리를 이용해 비뚤어진 강자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지난 몇 년간 생생하게 ..
※ 어제 명성교회가 세습을 완료했습니다. 낮에 사임하고 저녁에 위임하더군요...굉장히 급하게 처리하는 것보니 자기들도 뭔가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가...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하나 목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절대 명성교회로 부임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사람인데요.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많은 분들이 지금의 개신교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 비판 중의 상당수는 결국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절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성교회 소식을 들으며 2014년 4월에 쓴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나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몇 주 전에 우연히 기사를 검색하다 이 한장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곤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뭔가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내가 사진 한 장에..
※최근 '한샘'이라는 회사에서 직장내 성폭행 사건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멀쩡한 대기업에서도 저런 사건이 발생한다는게 놀랍기도 했지만 회사 측의 대응과 피해자를 '꽃뱀'으로 매도하는 양상들은 교회의 모습과 너무 닮았더군요. 그래도 사회가 교회보다는 전반적으로 훨씬 낫지만...너무나 낯익은 모습에 놀랐습니다. 올해 문대식 목사의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을 보고 기고했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한국교회의 무지와 편견 청소녁 사역을 하던 유명 목사의 성범죄 사건이 또 터졌다. 요즘은 목회자 성범죄 뉴스가 너무 자주 흘러나와 놀랍지도 않은 뉴스가 되어버렸지만 문대식 목사는 청소년 사역자로 명망이 높았고 그 피해자들 중에 미성년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주었다. 문대식 목사 사건에 대한 기..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오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겪으며 느낀 점들이 있다. 일단 경제적으로든 직위적으로든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룬 사람들이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성취한 사람들'이란 표현을 쓴다)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의 전부를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할 각오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그렇게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이 의지를 갖고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뿐 아니라 그렇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루고도 성취를 이뤄내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간증을 참 좋아한다. 교회에서 인기 있는 간증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나가는 신앙인’을 초청해서 자신이 '신앙'을 통해 어떻게 성공하고, 어떻게 부자가 되고,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한다. 이런 류의 간증에 감동받기 좋아하는 신앙인들의 마음에는 어쩌면 이런 심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신앙을 가지면(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어' 모든 간증을 그런 심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공하고 유명한 이들의 간증을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독교인의 마음속에서 저런 '욕망'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신앙'이 추구하는 '희생과 이타적 사랑'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런 간증을 들으며..
2014년에 쓴 글입니다. 전 개신교인들의 신앙생활 속에 '현실도피'의 심리를 많이 보게 됩니다. 교회생활에 헌신적인 기독교인일수록 복잡하고 더럽고 문제많은 현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그들만의 천국'속에 살고싶은 욕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현실도피의 신앙은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교회마저 후안무치한 '범죄의 사각지대'로 만들고 있죠. 이 세상을 떠나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자...전 그런 신앙인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무책임한 신앙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앙을 분석해 본 글입니다. 기독교를 병들게 하는 '진공 속의 신앙' 기독교인들에게 유서깊은 신앙적 오해, 뿌리깊은 신앙적 착각이 있다면, 그것은 ‘성과 속', ‘완전과 불완전', ‘거룩과 천박함'을 구분지어 '신..
※2014년에 ㅍㅍㅅㅅ에 기고한 글입니다. 교회 세습, 목회자 성범죄 등 개신교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온갖 사건에는 결국 '신앙으로 포장한 타락한 욕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는 왜 이렇게 천박하고 부끄러움을 모를까?' 이런 의문을 오랫동안 가져왔습니다. 결국 그런 타락한 욕망을 포장하고 합리화하는데 능한 '반지성주의'가 '욕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는 그에 대한 글입니다. 반지성주의가 가득한 신앙공동체에 속해있다면 본인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두 참담한 대가를 치르게 될겁니다.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기독교를 욕망의 종교로 변질시켰나? 기독교 신앙에는 ‘이성과 논리’를 이용하여 증명해 내거나 설명할 수 없는 ‘체험적’인 요소와 ‘신비적’인..
※며칠전 새벽기도로 명성을 얻은 한국의 대표적 대형교회가 온갖 편법과 권력을 동원하여 교단에서 변칙적인 세습안을 통과시켰죠.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라는 말이 무색한 교회의 파행적 행태에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절망했습니다. 한국교회를 망하게 하는 건 '대마불사'의 문화인 것 같습니다. 돈많고, 크고, 강한 이들을 욕망하고 추종하는 문화가 너무나 뿌리깊어서 양심이나 교리, 신학따위 그 앞에 다 무력합니다.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고 작아지고 초라해진 신을 믿는다는 종교인들이, 크고, 높아지고, 강해지기만을 바라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올해 초에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때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난지 얼마 안된 시점에 쓴 글입니다. 아직도 그때의 고통과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던 때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월호 사건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길만큼 커다란 실망과 절망을 느끼게 해준 사건이 되었습니다. 교회안에서는 그토록 '천국'을 갈망하고 '내세'를 사모하는 이들이 어쩜 저렇게 이땅의 천박한 욕망에는 발빠르게 굴면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는 편리하게 눈을 가리고 사는지...그것이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런 제 의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자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나서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해가 되었다고 해서 실망감이 덜한 건 아니었지만요...어쩜 그래서 더 씁쓸하고 안타까왔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저의 실망과 절망은 아마..